그리스도의 부활함에 관한 체험 후 기본 제물들에 더함 (3)
창세기
2015-01-29 , 조회 (80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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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부어지고 있으며, 내가 떠날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딤후 4:6)

For I am already being poured out, and the time of my departure is at hand.(2 Tim.4:6)

레위기 1장부터 7장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제물들과 연관하여서는 전제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는데 이는 그 때에 제물을 드리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 벧엘에서의 야곱과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드릴 무엇인가를 얻은 후 그들의 다른 제물들과 조화할 전제물을 드려야 했다. 민수기 15장 1절부터 10절과 28장 6절부터 10절은 전제물이 항상 기본 제물과 짝을 이루었음을 가리킨다. 전제물은 기본 제물의 크기에 비례하였다. 어린 양이면 포도주 한 힌의 사분지 일이요, 수양이면 포도주 한 힌의 삼분지 일이요, 수송아지이면 포도주 반 힌이었다(민 15:10).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체험할수록 더 많은 전제물이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다만 작은 어린 양으로 체험할 때 당신은 한 힌의 사분지 일에 해당하는 전제물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분을 수양이나 수송아지로 체험한다면 당신은 더 큰 전제물이 될 것이다. 다른 말로, 당신이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더 많이 드릴수록 그것과 조화하는 전제물은 더 커짐에 틀림없다. 우리의 체험은, 그리스도를 더 많이 누릴수록 우리가 더 많이 전제물이 됨을 증명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드릴 때 자동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제물과 조화하는 전제물을 체험한다. 어린 양과 수양과 수송아지는 다만 그리스도의 예표들이지만 포도주는 다만 그리스도가 아니다. 성경은 전제물이 그 자체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었음을 명백히 계시한다. 그것은 오직 기본 제물들 중의 하나와 조화하기 위해서만 드려질 수 있었다. 

기본 제물들은 그리스도이지만 전제물은 단지 그리스도 자신만이 아니다. 그것은 포도주가 우리가 되기까지 우리를 적신 그리스도이다. 마태복음 9장 17절의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였지만 바울은, 『관제와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되고…』라고 말했다(딤후 4:6). 디모데후서 4장 6절의 포도주는 바울을 적셨고 그로 하여금 포도주가 되게 한 마태복음 9장 17절의 그리스도였다. 전에, 이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였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우리가 되어 우리는 전제물로서 부어질 수 있다. 이 부어짐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에 달려 있다. 여기 벧엘, 하나님의 집안에서 우리는 전제물로 부어져야 한다. 매 주일 모이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체험을 갖지 못하는 믿는이들이 있다 하자. 그들이 전제물이 될 수 있는가? 분명코 아니다. 

그들이 전제물일 수 없는 까닭에 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하나님의 집으로 간주될 수 없다. 합당하게 하나님의 집으로 불리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기둥은 그 위에 전제물이 부어진 기둥이다. 만일 그 기둥 위에 부어진 전제물이 전혀 없다면 그때 그 기둥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그 안에 전제물의 부어짐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그 모임에 대해 의심해 보아야 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집인 모든 집회에서는 함께 모이는 사람들이 모두 전제물일 것이다. 신약만으로는 영적인 것들, 특히 그리스도와 교회 생활에 관한 것들을 분명하고 적절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또한 구약에 있는 그림이 필요하다. 우리는 창세기 35장에서 매우 생생한 그림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는 야곱을 본다. 28장에서 야곱은 이 기둥을 하나님의 집이라고까지 불렀다. 이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기둥이 하나님의 집의 건축의 문제라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 기둥 위에 부어지는 전제물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참된 건축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건축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이를 인해 주님께 감사하라-아직 그 기둥위에 전제물이 부어졌는가의 여부를 질문해야 한다. 전제물은 포도즙틀로부터 나오는 포도주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포도주를 마시는 우리의 체험에서 나온다. 포도주틀로부터 나오는 포도주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그리스도로 취하여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포도주가 되는 그러한 정도까지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사람들로 인해 완전히 만족하실 것이다. 이뜻은 깊다. 내가 믿건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기간에 주님과 함께 계속 전진한다면 그러한 관제물이 되어, 『주 예수님, 저는 이미 관제물로서 당신 위에 부어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신실하고 정직하게 깊은 확신을 가지고 그들이 이미 주님을 위하여 관제물로 부어지고 있음을 말할 수 있다. 전제물이 있는 모든 곳에는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진 기둥이 있다. 이 문제는 깊고 실지적이며, 우리의 체험 가운데 뭔가 깊은 것을 만진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적셔져 그의 유일한 관심이 그리스도와 교회인 사람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매우 깊이 만진다. (창 LS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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