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음의 가르침과 양심의 느낌
생명의 체험
2015-02-25 , 조회 (142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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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으로 말하면 그분께서 기름 발라 주신 것이 여러분 안에 거하니, 아무도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 바르시는 것이 모든 것에 관하여 여러분을 가르칩니다. 이 기름 바름은 참되고 거짓되지 않으니,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대로 그분 안에 거하십시오.(요일 2:27)  
 
And as for you, the anointing which you have received from Him abides in you, and you have no need that anyone teach you; but as His anointing teaches you concerning all things and is true and is not a lie, and even as it has taught you, abide in Him.(1 John 2:27) 

기름 부음의 가르침과 양심의 느낌 사이에는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우리가 말해온 바와 같이 정상적인 양심의 느낌은 우리 영 안에 계신 성령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 생각을 통하여 우리를 비춘다. 이 빛비춤 역시 일종의 관유이신 성령의 기름 부음이다. 따라서 양심의 느낌과 기름 부음의 가르침은 모두 다 기름 부음의 느낌에서 나온 것이다. 기름 부음은 영의 직감을 통과하여 생각으로 이해된 후에야 기름 부음의 가르침이 된다. 그러나 기름 부음이 양심을 통과하여 생각으로 이해된 후에는 양심의 느낌이 된다. 이것이 그것들의 관련성이다. 그러나 기름 부음의 가르침과 양심의 느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첫째, 양심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에서 나온 양심의 느낌 역시 선악 시비에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기름 부음을 통하여 나와 우리 영 안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기름 부음의 가르침은 영역에 있어 하나님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시비를 능가하며 직접 하나님 자신의 뜻을 접촉한다. 우리가 단지 양심의 느낌만을 주의한다면 다만 흠 없는 그리스도인이 될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능가하여 기름 부음의 가르침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접촉하고 하나님 안에 살아야 한다. 둘째, 기름 부음의 가르침의 주된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며, 그 강조점은 긍정적인 인도나 혹은 금지에 있다. 

그러나 양심의 느낌은 단지 사람의 범죄를 보여 줄 따름이다. 이것은 부정적인 정죄와 처리를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양심의 느낌이 아닌 기름 부음의 가르침을 주신다. 만일 우리가 기름 부음의 가르침에 순종한다면 양심의 느낌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든지 우리가 기름 부음의 가르침을 순종하지 않으면 즉시 양심의 정죄를 받게 되며 양심은 우리를 송사한다. 이것은 한 나라의 행정부와 사법부에 비유될 수 있다. 행정부가 순조롭게 돌아갈 때는 사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행정기관이 그 영향력을 잃거나 그 힘을 초과하여 나아갈 때면 언제나 사법부가 탄핵권을 행사한다. 기름 부음의 가르침과 양심의 느낌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름 부음의 가르침은 언제나 긍정적인 움직임인데 비해서 양심의 느낌은 언제나 부정적인 탄핵이다. 바꿔 말하면, 관유이신 성령이 먼저 우리 영의 직감에 기름을 바름으로 우리를 인도하거나 금지한다. 만일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은 더 나아가 우리 양심에 기름을 발라서 양심의 느낌을 산출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상적인 영적 상태를 유지하기 원한다면 우리를 교정하고 비난하는 양심의 느낌을 기다리지 말고, 언제나 기름 부음의 가르침 안에서 살아야 한다.(생명의 체험, 제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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