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음의 가르침의 본질 (1)
생명의 체험
2015-02-25 , 조회 (63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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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으로 말하면 그분께서 기름 발라 주신 것이 여러분 안에 거하니, 아무도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 바르시는 것이 모든 것에 관하여 여러분을 가르칩니다. 이 기름 바름은 참되고 거짓되지 않으니,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대로 그분 안에 거하십시오.(요일 2:27)  
 
And as for you, the anointing which you have received from Him abides in you, and you have no need that anyone teach you; but as His anointing teaches you concerning all things and is true and is not a lie, and even as it has taught you, abide in Him.(1 John 2:27) 

우리는 이제 기름 부음의 가르침의 본질과 특성을 보도록 하자. 첫째, 기름 부음의 가르침은 분명하게 말로 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느낌이다. 기름 부음의 가르침이 먼저는 우리의 생각을 통하여 이해되어야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어떤 문장이나 말이 아니다. 그 본질은 여전히 영 안에 있는 느낌이다. 그것이 말로 하는 언어와 느낌인 것같이 보일 수는 있겠지만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로 된 문장으로는 결코 나타낼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안색에 비유될 수가 있는데 안색은 어떤 말로 하는 언어가 아니라, 나타날 때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살면서 주님과 교통을 가질 때에 관유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기름을 바르심으로 뚜렷한 느낌을 준다.

 우리 생각이 합당한 지식으로 교육을 받았다면 뚜렷이 나타난 이 느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이로써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이해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지 문자의 가르침이 아니다. 비록 때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성경의 말씀을 계시해 주시지만 인쇄된 문자를 주지는 않으시며, 오히려 우리에게 성경의 원칙을 접하게 해 준다. 만일 완전한 성경이 인쇄된 말로만 되어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안경 하나를 구입하고자 주님께 구한다 하자. 그가 주님으로부터 한 문장으로 된 응답을 구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안경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다만 그에게 느낌과 원칙에 근거한 어떤 인식을 주실 따름이다. 실제적으로 말해서 원칙은 문자보다도 더 귀하다. 성도가 더 성숙하고 기름 부음을 더 깊이 체험할수록 성경 문자에서 더 자유롭게 되며 성경의 원칙에 관한 영 안의 느낌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기름 부음의 가르침에 대한 공과를 배우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확정된 말씀을 구하고 분명한 말로 된 가르침 얻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추구는 아주 쉽사리 우리를 속이며 위험스러운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결혼에 대한 주님의 뜻을 구하여 ‘예’나 ‘아니오’라는 분명한 답을 얻고자 기도한다 하자. 

이러한 추구는 매우 위험한 것이며, 사람으로 쉽게 오류에 빠지게 한다. 사실 그러한 것은 그 자체가 그릇된 것이다. 주님은 대개 우리 속의 느낌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신다. 주님은 좀처럼 말씀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기도하며 주님께 문제를 맡기고 내적인 평강을 느끼며 달콤한 교통을 맛볼 때에, 주께서 그 문제에 동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를 두고 기도할 때 막힘을 느끼거나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불안함을 느낀다면 주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의 가르침은 분명한 말이 아니라 하나의 느낌이다. 

둘째, 기름 부음의 가르침은 외적이기보다는 내적이며, 객관적이기보다 오히려 주관적이다. 그것은 속의 깊은 느낌이지 우리 밖에 있는 음성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으며, 객관적이 아니고 주관적이다. 흔히 우리의 내적인 느낌은 외적인 문제로 영향을 받는데, 이 외적인 영향은 여전히 내적인 기름 부음의 응답을 요한다. 만약 그것이 단순한 외적 영향이라면 거부되어야 한다. 기름 부음의 가르침이 이처럼 주관적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기름 부음에서 나오는 느낌이 우리 자신의 느낌인 것처럼 보인다. 이 상태에 이를 때 우리는 흔히 그러한 것이 성령의 느낌인지 우리 자신의 느낌인지를 의심한다. 흔히 우리는 “이것은 분명히 내 느낌이다. 

그것이 어떻게 성령의 느낌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의심한다. 그것은 성령으로부터 우리 안에 이르고, 우리를 통과하고, 우리와 혼합된 느낌이 우리에게 이러한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우리 자신의 느낌과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느낌이 진정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느낌과 구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님과의 교통이 끊어질 때 우리가 이러한 느낌을 다시 갖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의 교통을 회복할 때 이러한 느낌이 외관상으로는 우리 자신의 느낌같이 보이지만 다시 나타난다. 이것을 볼 때 이 느낌이 우리에게서 시작되지 않고 우리를 통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생명의 체험, 제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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