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설명
기도
2015-02-26 , 조회 (119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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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실재의 영이십니다. 세상은 그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4:17) 

Even the Spirit of reality, whom the world cannot receive, because it does not behold Him or know Him; but you know Him, because He abides with you and shall be in you.(John 14:17) 
 

성령이 사람에게 오시고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 목적은 다만 내적 충만이나 부으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그분이 내주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오심이 단지 그분이 오시는 것뿐이고 말씀이 없다면, 사람이 그분의 의도를 이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말씀이 없다면 그분의 의도가 설명될 수 있는 길이 없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내 집에 오지만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것은 나에게 상당한 어려움이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7절은 그 영이 올 때 그분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신다고 말하고, 15장 4절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도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한다. 

그다음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주님은 우리 안에서 말씀이 되시고 설명이 되신다. 이와 마찬가지로 골로새서에서는 우리가 드리는 감사와 찬양이 주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말한다. 에베소서에서는 우리가 그 영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찬양한다고 말한다. 오직 그 영의 충만함만 있고 말씀이 없다면 어떻게 당신에게 시와 찬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할 수 없는 이유는 일깨움만 있고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나는 기도할 필요를 느낄지 모르지만, 무엇을 기도하거나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나에게 말해 주는 말씀이나 설명이 없다.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울거나 몇 마디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일 것이다. 나는 철저하게 기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그 영은 우리 안에서 설명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설명이 될 때, 그것은 말씀이다. 요한복음은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영이라고 분명히 말한다.우리 안에 있는 그 영이 우리로 이해하게 할 때 그것이 말씀이다. 때로 우리에게 내적인 감동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영이 아직 말씀이 되시지 않고,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그것을 우리에게 설명하신다. 즉 그 영이 말씀이 되신다. 오직 그때에 우리는 그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말씀을 공급하는 사람에게 흔히 이러한 체험이 있다. 그가 한 마디 말을 하려고 일어설 때 그에게 감동이 있고 그 안에 부담이 있음을 느끼지만, 아직 특별히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모른다.

 그런 다음 그가 일어서서 말할 때 그에게 내적인 느낌이 있고 그가 말하면 할수록 더 분명하게 된다. 내적인 그 영이 말씀이 되었다. 기도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할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를 모른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할 때 그의 내적인 느낌을 느끼려고 한다. 그 결과 내적인 의식이 말씀이 되고 그때 말씀이 표현된다. 한 문장이 나오고 그다음 문장이 즉시 이어진다. 기도가 끝난 후 내적인 부담이 내려진다. 이것은 그 영이 말씀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참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움직이신 결과이다. 이 움직임은 그 영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 영은 말씀, 곧 설명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를 표현할 수 있다. (기도, 제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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