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의 죽음
창세기
2015-03-01 , 조회 (409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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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이 거의 죽게 되어 그녀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라헬은 아기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고 하였다.(창 35:18)
 
And as her soul was departing(for she died), she called his name Ben-oni; but his father called him Benjamin.(Gen. 35:18)

꽤 오랜 시간을 벧엘에서 머문 후, 야곱은 그곳을 떠나 여행을 계속하였다(35:16). 외관상 벧엘로부터 떠나는 이 여행은 적극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러나 야곱이 벧엘을 떠난 것은 하나님의 집을 떠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그의 영적인 체험에서 전진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비록 그가 벧엘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였었지만 여전히 계속 나아가야 했다. 우리는 창세기가 씨들의 책이요 그림들의 책(冊)임을 이미 보았다. 우리는 이 모든 씨들과 그림들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그림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의 묘사이다. 이 세 사람의 체험은 주님을 따르는 한 사람의 영적인 생활의 묘사이다.

야곱이 벧엘을 떠나 계속 여행하고 있었을 때, 그는 매우 깊고도 개인적인 다루심을 체험하였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야곱의 마지막 아들인 베냐민을 출산하던 중 죽었다(35:16-20). 이 체험은 사망과 출생 둘 다에 연관된 문제요, 잃음과 얻음 둘 다에 연관된 문제였다. 야곱은 라헬을 잃었고 베냐민을 얻었다. 만일 당신이 선택해야 한다면 그 어머니를 지키겠는가? 아들을 얻겠는가?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관념은 어머니와 아들 둘 다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당신이 마지막 아들을 얻고자 한다면 그 어머니를 잃게 두어야 한다. 잃음 없이는 얻음이 있을 수 없고 죽음 없이는 출생이 있을 수 없다.죽음을 떠난 부활이 없으므로 출생은 죽음으로부터 온다. 

라헬이 죽지 않았다면 베냐민은 결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라헬은 야곱의 천연적인 선택을 대표한다. 야곱에게 네 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오직 라헬만이 야곱의 마음의 원함을 따른 천연적인 최초의 선택이었다. 그는 레아를 맞아들이도록 강요당하였고 또한 부득이 두 하녀인 빌하와 실바를 취하였다. 그러나 레아와 두 하녀는 야곱의 마음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창세기를 주의깊게 읽는다면 당신은 야곱의 마음이 절대적으로 라헬에게 있었음을 볼 것이다. 그는 다른 세 사람에게는 전혀 마음이 없었다. 에서와 그의 부하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였을 때 야곱이 행한 바를 회상해 보라. 그는 두 하녀와 그 자녀들을 앞에 두었으며 중간에 레아와 그 자녀들을 뒤따르게 하였고 라헬과 요셉은 맨 뒤에 두었다(33:1-2). 

공격을 받을 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야곱이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두었다는 사실은 야곱의 마음이 라헬에게 있었음을 나타낸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다. 라헬의 죽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여기 35장에 기록되어 있다. 야곱은 여행을 하고 있었을때, 라헬이 다시 잉태한 것을 알고 기뻐했음에 틀림없다. 아마 그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그에게 또 다른 아들을 낳을 것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라헬은 그녀의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죽었으며 야곱의 천연적인 선택, 그의 마음의 원함은 빼앗긴 바 되었다. 벧엘에서의 체험 전에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의 원함을 허락하심으로 그의 천연적인 선택을 참으셨다. 그러나 벧엘에서의 체험 후에 그의 천연적인 선택은 빼앗긴 바 되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교회 생활을 체험하기 전에 우리의 천연적인 관념과 천연적인 선택과 천연적인 소원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거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것들 위에도 그분의 축복을 주셨다. 예를 들어, 라헬의 첫 아들인 요셉을 생각해 보라. 요셉이 태어났을 때 야곱은 매우 즐거워하며, 『이는 나의 마음의 소원 위에 임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나의 선택을 축복하셨다.』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벧엘에서의 체험 후 야곱은 그의 천연적인 선택을 잃었다. 당신이 교회 생활을 체험한 후 당신의 천연적인 선택은 뒤에 버려두어야 한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천연적인 선택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참으셨다. 

그러나 어느 정도 교회 생활을 체험한 후, 하나님은 그것을 더 이상 참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이것이 젊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벧엘에서의 체험으로부터 뒤로 물러서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에 대해 들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나는 결코 벧엘로 가지 않겠다. 오히려 나는 벧엘의 다른 쪽에 머물며 더 이상 가지 않겠다. 그러면 나는 나의 천연적인 선택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 당신은 벧엘에서 약간의 체험을 가진 후 당신의 천연적인 선택을 잃겠지만 그리스도의 예표인 베냐민을 얻을 것이다. (창 LS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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