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진리의말씀
2020-04-20 , 조회 (2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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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의 내용

A.솔로몬왕이 쓴 아가서는 탁월한 결혼에 이르는 사랑의 시이며.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최고 수준의 로맨스이다. 솔로몬은 남성형으로 평화라는 뜻이며 술람미는 동일한 명사의 여성형이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수도의 왕궁에 있는 왕이고. 술람미는 시골 출신의 소녀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두사람은 어울리지 않았다. 결혼에 관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왕과 시골소녀는 격이 맞지 않았지만 사랑에 빠졌고 그 둘은 함께 연결되었다. 

B.성경전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한편의 로맨스 이다. 아가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믿는 이들 개개인과의 연결안에서 나누시는 사랑에 대한 묘사이다. 신약전체는 몸의 생활을 강조하고 개인적인 생활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가서는 단체적인 방식으로 몸을 강조하지 않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믿는 이를 강조한다. 몸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받드시 주님과 개인적인 접촉을 해야 한다.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통을 기반으로 갖지 않는다면 합당한 몸의 생활은 실현될수없다.

C.시가서인 아가서에서 우리는 십자가, 부활. 승천 이라는 단어를 찾아볼수없다. 또한 새창조 혹은 휘장안에 라는 말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 책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여러단계를 밝혀 준다고 말할수 있는가.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가서에서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계시되었거나 밝혀진 것들을 볼필요가 있다.

십자가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십자가의 상징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부활과 승천이라는 말 대신에 부활과 승천에 관한 상징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책을 읽을 때 가장 어려운점은 이 상징들을  해석하는 것이다.

1.아가서는 많은 상징들로 구성되어있다. 아가서의 내용은 개인적인 믿는이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통을 점진적으로 체험해 가는것을 말하고있다.

1장2절-2장7절. 네 이름이 쏟은향기름 같고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으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같구나. 네가 일광에 쬐어서 거므스름할지라도 훌겨볼지 말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 내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자 같이 되랴. 여인중에 어여뿐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 

첫째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완전한 만족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추구하도록 이끌린다. (1;2-2:7) 그리스도의 연인은 매혹되어 그리스도를 쫓아달려간다. (1:2-4)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입의 입맞춤으로 그녀에게 입맞춤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2절)  이것은 가장 친밀한 입맞춤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입맞춤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쾌하게 하는사랑에 대한 반응인데 이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낫다. 또 이것은 그분의 매료하는 이름에 대한 반응인데 이 이름은 바르는 기름의 쏟은향 기름(관유)와 같다.

1.아가서에 있는 연인은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벗들이 그분을 좇아달려 가도록 그분께 자신을 이끌어 주시라고 요청한다.(1:4) 그리스도께 매혹된 모든 이들에게는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는 벗들이 있다. 내가 주님게 이끌린 이래로 많은 이들이 나와 함게 주님을 따랐다. 사랑하는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셧을 때. 베드로는 그분께 매료되어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으며  베드로의 벗들인 수많은 이들이 함게 그리스도를 따랐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다른이들 또한 그분을 따르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2.그리스도와 그분의 연인의 교통의 결과로 그녀는 교회생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양떼는 교회를 상징하는 또 다른 표징으로 수많은 믿는이들의 집합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분은 그분의 연인을 지성소(내실)인 그녀의 영안으로 이끌어서 그녀와 친밀한 교통을 갖는다. 여기에는 영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여기에서 언급하는 내실은 우리의 영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거처이고 그분의 지성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교통할떼 그분의 연인은 그녀의 벗들과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면서 즐거워 하고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정말로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3.연인은 그녀가 사랑하는 분과 교통할때 자신이 아담안에서는 죄인임을 본다. 그녀가 게달의 장막처럼 검다는 것이 이것을 가리킨다. 게달의 장막은 아담안에 있는 한 죄인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었다. 그녀가 솔로몬의 휘장처럼 사랑스럽다는 것은 이것을 가리킨다. 장막은 햇빛아래 있지만 휘장은 내실 안에 있다.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계달의 장막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같구나 (1장5절)

그러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연인이 교회생활안으로 들어가도록 그녀를 안내한다. 그리스도의 연인이 교회생활안으로 들어온후. 성령은 그들과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을 함께 변화되게 하신다. 그녀는 종파의 형제들 (내 어머니의 아들들 )에게 박해 를 받는다. 그리고 주님의 믿는 이들(벗들)의 교회들 (양때)에서 돌아섰다. 종파의 형제들이 비록 은혜(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그녀를 박해했고 그녀가 교회들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오늘날의 상황도 이와 같다. 

사랑하는 분은 연인이 교회들 (양때)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며 또한 주님께서 목양하시는 그분의 교회. 곧 각 지방에있는 교회들 (목자들의 장막) 안에서 그녀의 영적인 자녀들 (어린 염소새끼들 )을 먹이게 하신다. (아 1:7-8)  이것은 교회들을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들을 따를때 우리는 그분을 찾게 된다. 우리가 교회를 찾을 때 우리는 모든 어린 믿는이들(어린 염소새끼들)을 교회 안으로 이끌어 올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연인의 교통은 교회생활로 귀결된다. 아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 
(1장8절). 여인중에 어여쁜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9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그분의 연인은 또한 공개적으로 구속의 샘인 엔게디(새끼염소의 샘) 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포도원)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활(고벨화송이)을 누린다.

아가 1장9-17절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왕이 침상(내실)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품 가운데 몰약 향량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너의모습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그리스도의 연인은 강하고 천연적인 사람(바로의 병거를 끄는 준마처럼)에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며(백합화 마6:28) 단일한 눈(비둘기. 마10:16)으로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주님은 복종하는 그녀의 사랑스러움(땋은 머리가 드리워진 사랑스러운 두뺨)과 변화시키는 영과 그녀의 아름다움(보석 꿰미들로 꾸며진 목)을 감상하신다. 변화시키는 영과 그녀의 벗들(우리)은 그리스도의 구속의일(은장식)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그녀에게 조성시켜(금사슬)로 그녀을 단장해 준다.(11절)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연인과 앉아계실때 그리스도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나드) 향기를 뿜는다.(아 1:12) 우리의 소그룹에서 종종 주님은 보이지 않는 손님으로 우리와 함께 앉아계신다. 그리스도의 연인은 내밀힌 주님의 죽음(몰약)을 누린다. 그분의 연인은 또한 공개적으로 구속의 샘인 엔게디(새끼염소의 샘) 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포도원)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활(고벨화송이)을 누린다.

주님의 연인이 그 영에 의해 단일한 눈(비둘기)으로 그분을 바라보는 것으로 인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신다. 그분의 연인은 주님의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을 누리며. 또한 때 맞추어 자신을 공급하시는 풍성한 공급의 근원(사과나무)이신 그리스도를 감상한다. (2:3) 이것은 변화가 산출한 서로에 대한 감상이다. 

그분의 연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과 누림으로 만족한다. 그녀는 주님께서 감싸 안으시는 가운데(2:6) 그녀의 밤의 휴식처(침상)인 주님의 공급하시는 생명(푸름)안에서 안식함으로 만족하고. 피난처(들보와서까레)인 주님의 죽음(편백)과 부활(백향목) 안에서 안식함으로 만족한다.

2장8-3장5절.  십자가와 하나됨을 통해 자아에서 구출되도록 부르심을 받음

난 샤론의 수선화요 여자들중 내 사랑은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남자들 중 내 사랑은 수플속 사과나무라.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참 심히 기뻐하였고.그 실과 단맛 보았네.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승리의 깃발이구나. 너희는 건포도로 나를 돕고 사과로 시원케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감당치 못할병이 났구나. 그의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게로 받쳐주시고. 그의 오른손은 그 품에 안아 주시니. 예루살렘 여자들아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내 사랑 원하기전에 흔들고 깨우지 마라. 

그녀는 더 나아가 누림직한 교회생활(연회장)안에서 그녀 위에 나부끼는주님의 승리의 사랑(사랑의 깃발)으로 만족하고 생명의 떡으로(건포도)이신 그리스도로 기운을 돋으며 생명의 열매(사과)이신 그분으로 신성하게 되는 교회 생활 안에서 그녀의 사랑의병을 치유받는다.

그리스도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믿는이들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그녀가 그분에 대한 다음단계의 체험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할때까지 (그녀가 원할때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체험.즉  자아를 벗어나고 자시성찰로 인하여 은둔하는데에서 벗어나 그분과 비밀한 교통 안으로 들어가는 체험에서 그녀를 깨우지 말라고명령하신다.

2장8-9절. 나의 사랑하는자의 목소리 내게 들린다. 보라 그가 산을 넘어 신속히 달려 오누나. 9절.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들사슴으로 우리의 벽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 보며 창살틈으로 였보는 구나.

주님의 연인은 아가서 2장9절에서 내적성찰을 하는 자아인 우리의 벽 안에 있었다. 이벽은 자아 밑바닥에 있다. 그녀의 내적성찰은 그녀를 주님과 분리시킨 벽을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연인은 십자가와 하나 됨으로 자아에서 구출되도록 그분께 부름 받는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연인의 체험의 두번째 단계이다. 중요한 세단어가 이 부분을 해석하는 것을 도와 주는데 곧 십자가와 자아와 자기 성찰이다. 십자가는 바위틈과 낭떠러지 은밀한 곳으로 상징된다. 이것들은 안전한 장소 이기는하지만 울퉁불퉁하여 거의 누구도 그곳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바위틈과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분명 타락한 사람에게 안전한 장소인 십자가를 의미한다.

비록 아가서에 자아에 대한 표시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체험에 따르면.두번째 단계에서 그것이 나타난다. 자아는 매우 간교하다. 자아는 자기 성찰이라는 거짓된 가면을 쓰고 들어온다. 사실상 자아는 자기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자기성찰이란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살피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성찰을 할때 자신이 어떤 일에서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죄를 자백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반복해서 자백하면서 더 많이 자백할수록 더 많이 용서를 받는다고 생각 할 것이다. 사실상 이런 종류의 자백은 사탄적인 자아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이러한 종류의 상태. 곧 자기 성찰로 인하여 산출된 침체된 상태에서 우리를 구출할수있다.

그리스도의 연인은 그분과의 교통으로말미암아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능력으로 십자가와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자아에서 구출되도록 부름받는다. 

그녀가 사랑하는 분이 산을 넘고 언덕들을 넘어 오는 노루와 숫사슴처럼 뛰어오는것을 본다는 것은 그분의 부활능력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교통에서
어려움은 모두 우리편에서 오는 것이다. 어떠한 산들이나 언덕들도 그분을 방해 할수없다. 우리는 낭떠러지 은밀한 곳(십자가)에 있을때 유일한 길은 그분의뛰어오르심과 뛰어넘으심을 의지하는 것 뿐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분이 우리 벽 뒤에서 서성이는 것은 연인의 문제인 자기성찰이 그녀와 그분 사이를 나누었음을 상징한다. 그분이 창문들 틈으로 들여다 보고 창살틈으로 엿보고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연인과 교통하시고 교제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창구를 상징한다. 아무리 우리가 자신을 은밀하게 감추려고 해도 그리스도께서 보실수있는 창이 있다.

(찬송가992장) 그 사랑 내 위에 기라.그 사랑 내 위에 기라.날 잔치 집으로 데려가니.그 사랑 내 위에 기로다. 그 사랑이.내 위에 깃발이라네.그 실과 내 입에 달아 그 실과 내 입에 달아 나 그 그늘 아래 기뻐하네 그 실과 내 입에 달았네. 달고 다네 그 실과 내 입에 다네 .나 그 그늘 아래 기뻐 하네 그 실과 내 입에 달았네

주님은 그분의 연인이 그분 안에서 안식하기를 원하신다.(아2:7) 그분은 참견하기 좋아하는믿는 이들(예루살렘의 딸들)에게 그분의 연인이 그분에 대한 두번째 단계의 추구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할 때까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체험하고 있는 그분의 연인을 깨우지 말라고 엄명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고 그분을 체험하며 교회생활 안에서 만족하는 목표에 이르렀다. 

2장10-17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 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아가 2장10-13절까지에서 그분의 연인은 그녀의 사랑하는 분께 반응하기를 간청 받으며 또한 겨울이 지나고 부활의 넘치는 풍성의 봄이 이미오고 있음으로 인하여 격려 받는다. 10절에서 "내 사랑하는 이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일어나서 함께가자"는 그리스도의 연인이 그분과 교통하면서 그분께 응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상태안에 침체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분의 사랑안에서 그녀를 일으키신다. 우리가 영적인 추구에서 어떤성취가 있을때마다. 낮은 상태로 떨어질수있다.이러한 상태는 우리의 자아로 인한 것이다. 11절의 겨울과 시련의 때가 지나가고 부활의 봄의 때가 오고 있음을 가리킨다.

14절에서 그리스도는 십자가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고 싶어하시고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신다.그분의 부활능력 안에서 그분을 추구하는 이를 부르시는 것은 십자가에 대한 체험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15절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연인에게 그녀의 특이함과 습관과 자기성찰. 곧 작은여우을 주의 하라고 명령하신다.이러한 것들은 모두 그분을 위한 연인의 부활. 꽃이만발하는 포도원을 망친다. 포도원의 꽃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은 우리의 특이함과 습관과 자기성찰을 상징하고 포도원들은 교회생활을 상징한다. 이러한 특이함은 교회에 어려움이 된다. 오직 십자가만 우리를 특이함에서 벗어나게 한다.

2장16절부터 3장1절까지에서 우리는 그분의 연인이 거절과 그녀의 실패하는 것을 본다. 17절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속하셨고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분은 그녀와 함께 계시지 않고 그녀에게서 떨어져 순수하고 신실하게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먹이고 계신다. 이 시점에서 그녀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아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 되어주세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녀는 그분을 거절한다. 그녀는 그분께 그녀의 침체된 상태가 끝날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들이 분리되어 있는 동안 베데르 산들에서 노루와 수사슴처럼 부활안에서 자신에게 돌아와 주시기를 요청했다. 이 분리는 그녀가 아닌 오직 그분에 의해서만 제거 될수있다. 베데르라는 말은 분리를 뜻한다. 

사랑하는 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주님 저는 준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시지 마시고 내 상태가 끝날때까지 기다려 주시기 원합니다. 분리의 산에있는 노루처럼 되어 주세요" 그녀는 자기 성찰안에 자신의 낮은 상태안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분을 찾으려해도 그분를 찾는데 실패한다.(3:1)

아가 3장1-4절.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아가서3장 2절과 4절에서 그분의 연인은 깨어나고 침체되었던 그녀의 상태에서 회복된다. 그녀는 자신 안에서 나와서 다시는 자기성찰로 돌아가지않는다. 이전에 그리스도의 연인은 자기성찰이라는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어느날 그녀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의 방식과 방법으로 그녀가 사랑하는 분을 찾으려고 한다.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에 이르는 노정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그들에게 "내 혼이 사랑하는 그이를 보셨나요"(3:3) 라고 묻는다. 그녀는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그녀가 사랑하는 분를 찾았고 비밀한 교통을 갖기 위해 자신을 거듭나게 한 "은혜의 영안으로" 그분을 모셔들이기 까지 그분을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아가3장4절에서 그분의 연인은 "나 그들이 지나치나마자 내혼이 사랑하는 그이를 찾고는 그이를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에 내 어머니의 집으로 나를 잉태하신 이의 방으로 그이를 이끌어 들이기까지"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집은 그녀가 태어난 곳이며 어머니의 방은 그녀가 잉태된 곳이다.

그분의연인이 깨어났을때 소생되었고 그녀가 사랑하는 분을 찾고서는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이전에 그녀가 놓친 이유는 꼭 붙잡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분을 꼭 붙잡은 것이다. 그녀는 비록 마땅히 자신에게서 나와서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느낌에서의 그분의 임재를 추구하고 사모하고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가 아직 배우지 못한 공과가 많고 아직 모르는 일이 많지만 주님은 기꺼이 그녀를 만나주시고 그녀에게 붙잡혀 끌려가신다. 그녀는 아직 영과 혼을 분리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은 여기서 그녀을 탓하지 않으신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그녀의 어머니의집.곧 그녀가 은혜로 태어난 곳으로 이끌어들였으며 그녀가 사랑으로 잉태된 곳으로 이끌어 들였다. 

워치만니.위트니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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