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이상과 부담
기도
2008-09-05 , 조회 (49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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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부담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기도해야

기도는 일종의 봉사이므로 응당 기도를 첫째 위치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의 궤계는 항상 주님과 관계되는 어떤 일을 기도 앞에 두고 기도를 맨 마지막에 두게 한다. 기도의 중요성을 아무리 여러 번 일깨워 준다 하더라도 기도를 중요시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말씀 전하는 집회나 다른 집회는 많이 참석하지만 기도집회는 적은 수가 참석한다. 우리의 주된 봉사가 기도라는 것을 여러 번 말하고 기도생활이 실패하면 모든 일이 실패한다고 말했어도 여전히 기도는 중요시 되지 않고 있다. 주님에 의해 우리의 눈이 밝아져서 새롭게 기도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 자신을 드려서 기도의 봉사를 하려고 할 때 사탄의 공격이 연달아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기도하려고 하면 누가 와서 문을 두드리거나, 전화벨이 울리거나, 아이들이 장난하거나, 어른들이 시끄럽게 한다. 병을 앓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본래는 아무 일도 없다가 우리가 전적으로 기도하려고 할 때 많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고 예견하지 못한 것들이 잠복된 군인들같이 돌연히 우리에게 닥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한 사탄의 계획적인 음모이다. 사탄의 궤계는 우리로 다른 일에 분주하게 하고 기도할 시간을 없게 한다.

우리는 반드시 기도시간을 위해 싸워야 하고 반드시 기도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여유가 있어야 기도하려고 하면 영원히 기도할 기회가 없게 된다. 앤드류 머레이는 “일정한 시간에 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시간을 갖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또한 기도시간이 마귀의 궤계로 빼앗기지 않도록 기도로 지켜야 한다. 기도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기도가 방해받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동안에 대적의 속임수에 빠져 기도가 저지 받지 않고 전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우리는 사탄이 우리의 기도를 끊고 우리의 기도를 파괴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몇몇 사람이 같이 기도할 때에 사탄은 결코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그는 이런 기도를 중단시키기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고 계획할 것이다. 까닭 없이 생긴 뜬소문, 거짓된 이야기를 전하고 듣는 것, 이유 없이 의심하는 것, 복잡하게 된 오해, 자신도 모르는 두려움, 바람 없이 생긴 풍랑의 위협과 같은 것들은 기도 모임을 요동케 하고 동심합의(同心合意)를 파괴하기 위하여 사탄이 은밀하게 조작한 것이다. (교회의 기도사역 84~88, 91쪽)

 

우리가 하나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사도행전 1장에서 동심합의의 기도가 2장에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가져왔다.

오늘 우리는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교회의 하나 됨 안에 있다. 교회의 축복은 하나 됨 안에 있다. 어떤 일의 성취보다 하나가 더 중요하다. 하나를 잃을 때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가 이뤄져야 활력그룹이 축복을 얻는다. 과거에 우리는 활력그룹을 힘써 해 보았지만 몸 안에 하나가 없었기 때문에 축복이 없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간구의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삼일성 안에서 하나가 되는 기도이다. 삼일 하나님과 하나되지 않을 때 그 기도는 공허한 것이다. 한 보리떡이 되려면 개인주의가 끝나고 육체가 끝나야 한다. 그 다음에 전략적인 기도와 권위의 기도가 응답된다.

이 하나 됨 안에서 이 집 저 집에서의 활력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어떤 일을 놓고 하나 되려고 기도하는 것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참된 하나는 삼일 하나님(삼일성) 안에 있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을 이루기 위한 기도와 교통은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분열을 가져올 수가 있다.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의 주님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22)”

 

 

본질적으로 변화된 120명-동심합의 기도

주님의 죽음 이전에 제자들은 영적인 일들을 위한 기도에 관심이 없었다.(눅22:40, 45-46) 그보다도 그들은 누가 더 크게 인정받게 되는가를 놓고 서로 다투었다(눅22:24). 그러나 이제 주님의 부활과 승천 후에 그들의 영적 상태는 급격히 변했다. 그들은 그들끼리 다투지 않고 오순절 날 전에도 동심합의(同心合意)로 기도에 힘쓸 부담을 가졌다. 그때 그들은 경륜적으로 부어지는 능력의 영을 받기 원했다(행 2장). 이것은 그들이 주님의 부활의 날에 본질적으로 내주 하는 생명의 영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요 20:22) 확실한 표시요 증거이다. 이것은 또한 그들이 주님의 승천에 대한 이상에 의해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있어서 강화되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1장 14절에서 제자들이 여자들과 마리아와 주님의 동생들과 함께 모여 동심합의로 기도하기를 힘썼다는 말을 듣는다.

120명이 열흘 동안 동심합의로 기도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동심합의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들 속에 그리스도를 그들의 생명과 인격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무르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위협 아래 있었다. 확실히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 백 이십 명이 본질적으로 변화를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사도행전 라이프 스타디 42, 44쪽)

 

몸의 건축을 위한 기도

사도행전의 전체 기록에서는 또한 우리에게 언제나 몸 안에서 행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바로 1장에서부터 베드로도, 요한도, 저 120명도 개별적으로 행동하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이 단체의 사람들의 모든 행동은 한 몸의 행동이었다. 백 이십 명은 동심합의로 함께 기도하였으며, 성령 안에서의 침례를 받았으며, 복음을 전파하였고, 예수의 간증을 짊어졌으며, 항상 한 몸으로 움직이고 행동하였다(1:14, 2:1, 4, 14, 46-47). 1장에서 28장까지 이 단체의 사람들의 행동은 한 몸의 행동이었다. 저희 중에서 개인적으로 행동하였던 자를 찾기란 어렵다. 비록 빌립이 사마리아에 있었을 때 8장에서 혼자서 복음을 전파한 것처럼 보이나, 저가 정한 것을 확고히 하려고 베드로와 요한이 왔었다(5절, 14-17절). 몸에게 능력이 되시는 성령은 빌립이 전파한 것을 통하여 그 믿는 이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였다. 몸에 성령이 전달된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사마리아 믿는 이들에게 안수하였을 때였다. 이것은 심지어 빌립이 전한 것도 개별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가 전파한 것은 몸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각장마다 개인적인 믿는 이들이 아닌 몸의 움직임과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활동들은 몸에 속한 것이요 몸을 위한 것 즉 교회의 건축을 위한 것이었다. 아무도 몸과 아무 관계가 없는 식으로 처신하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누구나 몸의 건축을 위한 방식으로 처신하였다. 저희가 행했던 것의 결과는 교회의 건축이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빛 안에서 본 신약의 개관 1권 154쪽)

 

기도를 통하여 가정을 열게 해야

교회가 가정들 안에서 건축되면 그 가정들이 변화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취하고 계시는 길이 믿는 이들의 가정에서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가 가정에서 건축되면 그 가정은 변화될 것이다. 전에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투는 부부이었다 해도 일단 가정을 열면 다툼을 멈추게 된다. 아이들도 세상의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고 보존될 것이다. 결국 이 가정은 합당하고 정상적인 가정이 될 것이다. 몇 몇 성도들을 초대해 본 적이 없는 가정들의 경우에 남편과 아내가 낡아질 수 있다. 부부사이의 대화가 느슨하고 가볍게 될 수 있다. 그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게 될 것이고, 결국 서로 다투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나뉘거나 이혼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을 보호하고 세상으로부터 분별시키는 최선의 길은 가정을 여는 것이다. 가정이 열릴 때 매일 매일 당신은 주님의 임재를 누리고 그분의 은혜에 참여할 것이다. 대부분의 TV들이 우리 가정에서 팔리거나 없어질 것이다. 대신에 우리는 하늘에 속한 이상(heavenly vision)을 보게 되고 누리게 될 것이다. 가정을 열 때 부부가 지체들 안에서 자라고 자녀들이 영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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