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중점 12. 그리스도의 승천과 그 몸의 건축
에베소서연구
2009-12-19 , 조회 (26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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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중점 12.

그리스도의 승천과 그 몸의 건축(4:7-16)


에베소서 4장 7. But to each one of us grace was given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 gift of Christ. 8. Therefore the scripture says, “Having ascended to the height, He led captive those taken captive and gave gifts to men." 9. (Now this, “He ascended," what is it expect that He also descended into the lower parts of the earth? 10. He who descended, He is also the One who ascended far above all the heavens that He might fill all things.) 11. And He Himself gave some as apostles and some as prophets and some as evangelists and some as shepherds and teachers, 12. For the perfecting of the saints unto the work of the ministry, unto the building up of the Body of Christ, 13. Until we all arrive at the oneness of the faith and of the full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t a full-grown man, at the measure of the stature of the fullness of Christ, 14. That we may be no longer little children tossed by waves and carries about by every wind of teaching in the sleight of men, in craftiness with a view to a system of error, 15. But holding to truth in love, we may grow up into Him in all things, who is the Head, Christ, 16. Out from whom all the Body, being joined together and being knit together through every joint of the rich supply and through the operation in the measure of each one part, causes the growth of the Body unto the building up of itself in love.




8. Therefore the scripture says, “Having ascended to the height, He led captive those taken captive and gave gifts to men."


  8절에서 ‘...자들(those)’이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구원받기 전에는 사탄에게 사로잡혔던, 구속된 성도들을 말한다.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사로잡으셨다. 즉 그분은 그들을 사탄에게 사로잡힌 데에서 구출하사 자신에게로 데려오셨다. 이것은 그분이 죄와 사망으로써 그들을 사로잡았던 사탄을 정복하고 이기셨음을 가리킨다.


  확대역 성경은 ‘그분이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고’를 ‘그분이 패배한 원수들의 행렬을 이끌고’라고 번역하고 있다. 패배한 원수들이란 아마도 사탄과 그의 천사들과 죄인인 우리를 언급하며, 또한 사탄과 죄와 사망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가리킨다. 그분이 승천하실 때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전쟁에서의 포로들인 패배한 원수들의 행렬이 있었다.


  여기서의 은사들이란 여러 가지 봉사들을 위한 능력이나 자격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11절에 있는 각종 은사 있는 사람들 -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자와 교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과 사망으로부터 그들을 정복하고 구출하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승천 안에서 구출된 죄인들인 그들 자신을 그분의 부활 생명으로 그러한 은사들이 되게 하셨고, 몸의 건축을 위해 그들을 그분의 몸에 주셨다.


11. And He Himself gave some as apostles and some as prophets and some as evangelists and some as shepherds and teachers,


  9절과 10절은 삽입 부분이다. 이것은 11절이 8절의 연속임을 말한다. 8절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은사들을 주셨다고 말하며, 11절은 그분이 혹은 사도들로, 혹은 선지자들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들로, 혹은 목자와 교사들로 주셨다고 말한다. 7절의 ‘각 사람’이란 각기 일반적인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를 뜻하며, 한편 11절에 언급된 네 종류의 은사 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은사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가리킨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들은 인도하는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자와 교사들이다. 뒤따르는 자들인 우리는 모두 몸에 대해 그러한 은사들이 될 수 있다.


12. For the perfecting of the saints unto the work of the ministry, unto the building up of the Body of Christ,


  12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은사들을 주시는 이유를 볼 수 있다. ‘이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사역의 일을 하도록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에서 ‘이는(for)'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무게 있고 의미 깊은 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실 목적을 위해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을 주셨음을 가리킨다. 성도들은 ‘사역의 일을 하도록’ 온전케 된다.


  ‘-을 하도록(unto)'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결국 -이 되는(resulting in)'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온전케 함이 결국 사역의 일이 된다. 11절에 있는 많은 은사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오직 한 사역만을 가질 뿐이다. 이것이 신약 경륜 안에 있는 유일한 사역이다. 문법 구조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함’이 ‘사역의 일’이다. 11절에 있는 은사 있는 사람들은 사역의 일로서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13. Until we all arrive at the oneness of the faith and of the full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t a full-grown man, at the measure of the stature of the fullness of Christ,


  13절은 계속해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충만한 지식에서의 하나와, 온전히 성장한 사람이 됨과,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에 이르기까지’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 의하면 온전케 된 성도들은 세 가지 것들 -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충만한 지식에서의 하나, 온전히 성장한 사람이 됨,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 -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충만을 갖고 계시며, 그 충만은 신장의 분량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에 이르러야 한다.



Ⅰ.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왕래


  그분의 우주적인 왕래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수많은 죄인들을 모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사로잡았던 사탄을 패배시키셨다. 한 때 우리는 사탄과 죄와 사망에 의해 사로잡혔던 포로들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음부로, 음부에서 다시 땅으로, 땅에서 다시 하늘로 왕래하심으로, 한편으로 우리 모두를 얻으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강탈하고 우리를 사망의 권세 아래 묶어 놓았던 사탄을 정복하셨다. 사탄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포로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삼층천으로 승천하실 때 그분이 포로들의 행렬을 이끌어 이 포로들을 아버지께 바치신 것을 모든 천사들이 알고 있다. 이 행진이 얼마나 승리로 당당한 축전이었겠는가! 비록 이 영광스러운 사건이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었지만, 천사들에게는 보였다. 천사들은 우주의 역사 가운데 엄청나게 의미심장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것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경탄할 만한 사실이다.


Ⅱ. 그리스도께 사로잡힘


  19세기보다 더 이전에 우리는 그리스도께 사로잡혔으며 그분의 포로들의 행렬 속으로 넣어졌다. 그분께 사로잡힌 바 된 자들로서 우리는 도망칠 길이 없다. 우리가 결코 예수를 본 적이 없지만, 우리가 그분께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분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행렬 안에 있으며, 그분으로부터 달아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사로잡혔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보신 후, 아들에게 은사들로 되돌려 주셨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왕래를 통하여 몸에게 은사들이 되었다.



Ⅲ. 그 몸과 사람들에게 은사들을 주심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왕래하심을 통하여 우리 죄인들이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은사들이다. 장래에 주님이 우리를 어는 곳에 보내시든, 우리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은사(선물)들로써 보내심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캠퍼스들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기쁜 소식을 외치는 복음 전하는 자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을 접촉할 때 그들에게 복된 소식을 말해 주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행하는 데 신실하다면 우리는 복음 전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주님의 길 안에서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것들 안에서 그들을 가르치는 자들인 목자들과 교사들이기도 하다.


Ⅳ. 그 사역의 일


  12절에서 밝혀 주듯이 은사들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사역의 일을 하도록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바 되었다. 문법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이라는 구와 ‘사역의 일을 하도록’이라는 구는 동격이다. 이는 이 두 구가 같은 것을 언급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역의 일이 곧 몸의 건축이다.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은 사역의 일을 하도록 성도들을 온전케 한다. 이것은 누구의 일인가? 11절에 언급된 은사 있는 자들의 일인가, 아니면 성도들의 일인가? 온전케 하는 자들의 일인가, 아니면 온전케 된 자들의 일인가? 그 답은 온전케 하는 자들과 온전케 된 자들 모두의 일이라는 것이다. 사도들이나 기타 은사 있는 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일이기도 하다. 나는 12절에 있는 사역의 일이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의 일임을 말한다기보다는 성도들의 일임을 더 말한다고 믿는다.


Ⅴ. 성도들을 온전케 함


  당신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이 무엇을 온전케 한다고 생각하는가? 합리적이고도 논리적인 단 하나의 대답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을 성도들이 할 수 있도록 그들을 온전케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온전케 하는데 신실하다면 삼사년 후에는 초기의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 교사들에 의해 행해진 것과 같은 종류의 일을 하도록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될 것이다.


  사도행전 8장에서 교회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 믿는이들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았다. 흩어진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의 일을 수행했다. 나의 바램은 많은 이들이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로서의 기능을 발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흩어진다면 우리가 낮은 곳에 있음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그곳에서의 주님의 권익을 위해 부담을 갖게 될 것이다. 먼저 그들은 복음을 전파할 것이고 그런 다음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돌보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일을 하기 위해 온전케 되어야 한다.


Ⅵ. 교회 안에서와 사역 아래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실행은 신약에 따른 주님의 길이 아니다. 기독교 안에서는 주님을 섬기기 위한 사람들을 훈련시키려고 신학교들이 설립된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그들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라 온전케 되지 않는다. 성도들이 참으로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교회 안에, 그리고 사역아래 있어야 한다.


  사실상 우리 가운데서 사역의 일을 하도록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성취되어진 것이 별로 없음을 나는 매우 염려하고 있다. 얼마나 많이 우리는 타락된 기독교의 영향 아래 있어 왔는지!


  요즈음 나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에 관한 매우 무거운 부담을 지고 있다. 이 부담은 초기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일을 모든 성도들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보기 전에는 내려놓아질 수 없다. 나는 단지 설교자나 성경교사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갈망하는 것은 자신이 온전케 되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Ⅶ. 생명과 기능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생명과 기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온전케 되는 길은 생명 안에서 자라는 것이요 기능에 있어서 노련하게 되는 것이다. 「온전케 함(perfecting)」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또한 완성함, 장비함, 갖추어 차림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성도들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그를 완성시키고, 장비시키고, 갖추게 하는 것이다. 생명 안의 성장에 의해서만 우리는 완성될 수 있다. 성장되지 않는 한 우리는 완성될 수 없다.


  인간 존재인 우리는 자라야 하며 또한 배워야 한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물질적인 일에서와 같이 훈련의 필요가 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 우리는 성숙함, 즉 생명 안에서의 성장이 필요하며 또한 기술도 필요하다. 성숙은 성장에서 비롯되며 기술은 훈련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온전케 하려면 그들이 자랄 수 있도록 영적인 음식으로 양육시켜야하고, 또한 기술들이 발전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Ⅷ. 철저한 훈련의 필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훈련의 문제에 대한 나의 부담을 내려놓지 못했다. 우리는 교회생활의 실행을 위해서 훈련되어야 한다. 이는 훈련이 우리의 교회생활의 실행을 부요하게 하고 높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도움이 충분하지는 못했더라도 주의 회복 안으로 들어온 이래, 많은 성도들이 몇 가지 훈련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철저하고 완전한 훈련에 대한 필요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떤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 삼 사 년 정도 지난 후- 이 나라에서 주의 회복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실질적으로 충분히 훈련되어지는 것이 나의 부담이다.


  훈련된다는 것은 우리가 자라도록 그리스도의 풍성한 공급을 받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말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사람을 접촉하는 데 있어서, 돌보고 전파하고 가르치는 데 있어서 능숙하게 되도록 갖추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재능 있는 연설가가 아니라고 해서 말할 수 없다고 하지 말라. 우리는 모두 주님을 위해서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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